금서목록이 진짜로 시대의 물로켓이지
00년대는 세카이계 유행
별=세계라는 일본 특유의 이상한 사상 때문에, 스케일도 대개 행성딱으로 제한됨
10년대에는 이세계 & 러브코미디 캐빨 유행
결과적으로 근 20년 동안 우주적인 서사, 거대한 세계관과 무관한 장르들이 서브컬처 메타를 지배해왔음
금서목록은 그런 시절에 영미권의 우주론, 종교, 형이상학적인 서사와 개념들을 차용하고 통합시켜서 나름의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한 몇 안 되는 작가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겠지
누더기 옷마냥 엉성하게 기워 맞춘 거긴 해도, 당시 동양권 독자들에게는 이게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을 거임
(10년대 후반이전,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구축해서 먹힌 비슷한 예로 나스, 용기사07, 안노, 마사다 타케시 같은 작가들이 있음)
때문에 금서목록은 작가가 명백히 작품성을 해치는, 실패로 수렴할 수밖에 없는 급진적인 파워 인플레와 팽창을 몇 권 내내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인기를 끌 수 있었음.
(나중에 신천지로 작가 스스로 작품을 순수박살 내버리긴 했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
따라서 카마치의 선구안은 대단하다고 볼 수 있음
근데 딱 거기까지
10년대 후반~20년대에 들어서면서 "형이상학적 신비"는 서브컬처에서 더 이상 특별한 무기가 아니게 됐기 때문임
당장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만 따져도 즉사치트, 아노스, 야생라보, 슬라임, FGO 등등 수두룩하고, 마이너한 픽까지 합치면 셀 수도 없이 많음.
(아마도 배위와 그 똥을 그대로 받아먹는 유튜브/틱톡의 vs놀이가 20년대 들어 갑자기 덩치가 커진 것도 한몫했다고 생각)
하다못해 소년만화인 갓오하조차도 영지주의, 불교, 기독교 개념을 차용함
즉, 형이상학적 신비는 이제 독자들에게 '고상함'이나 '불가해함' 같은 미지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작품의 자연스러운 클리셰 중 하나로 전락했다는 거임
내가 알기로 블루 아카이브도 양자 우주니, 죽음의 신이니 뭐니 나온다던데 이게 내 주장의 방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음.
어쨌든 핵심은, 이제 사람들이 "종교적 개념을 썼다!", "우주의 운명을 건 스토리다!" 같은 이유만으로 작품을 고평가해주지 않는다는 거지
에반게리온이 요즘세대에게 욕먹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고
애니메이션은 쌀먹이야, 스토리라인은 쓸데없이 난해하고 성장형 주인공 서사는 예전만큼 잘 먹히지도 않음
오히려 "영지주의? 생명나무? 그딴 건 ○○도 쓰는데?" 같은 반응이 먼저 튀어나옴
결국 형이상학적 세계관이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세계라는 거품이 꺼지면서, 다시 기본적인 스토리 캐릭터로 본질적인 평가를 받는 위치로 내려오게 됨
여기서 기존에 형이상학적 신비를 차용한 개척자들은 어떻게 되었나?
안노는 에반게리온은 비판받지만 나름 감독으로써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고 있고 나스야 뭐 말할 것도 없지
반등하지 못한 케이스로는 마사다 타카시는 상황이 어려워보이고 용기사07은 완전히 콘크리트층만 남은 느낌
여기서 금서목록의 위치는 어디냐
힘든 상황은 아니지만 다시 반등하지 못한 케이스로 남았음
신비라는 허물을 벗겨내고 보니 남은 건 어이없는 전개, 끝없는 뇌절, 몰입할 수 없는 배경, 캐릭터성은 십수 년 전 외전작의 전기 속성 캐릭터 하나한테 전부 따잇
그렇다고 형이상학적 세계관 구축은 잘했나?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깊이는 몰라도 딱, 형이상학적 세계관 구축만 보면 슬라임이 더 잘했음
양자니 트리다이어그램이니 카발라니, 요즘에는 그렇게 대단하게 쳐주는 설정도 아니고.
금서목록을 보면 참 착잡함
마치 선행학습으로 만들어진 영재를 보는 느낌
초등학생 때까지는 신동 소리 듣다가 중고딩 되면서 점점 평범한 학생이 되어가는 애들처럼, 스케일도 캐릭터성도 세계관도 이젠 평범한 수준일뿐
예전에 지녔던 탁월함이 서서히 메말라가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네

사실 이거 보여주려고 썼다
그렌라간>>금서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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