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게문학] The F U G - 1 그레이스와 유린
거대한 후크가 내리 우는 붉은 장막에 무대에는 빛이 꺼지고 관객을 즐겁게 하던 배우들도 빛을 잃는다.
이것은 실현되어야만 할 예언.
그리고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오늘은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다.
달 아래에서도 매혹적인 향을 잃지 않는 장미의 정원도
달 아래에서는 신수의 푸른빛을 잃어버리는 석조호수도
달 아래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검은 바다의 빛나는 보석들도
모든 것이 아름다운 밤이다.
탑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이 모든 것이 내게는 빛이 없는 색이 없는 향이 없는 맛이 없는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를 만나고부터는 아침의 태양이 눈에 부셔졌고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했으며 사람의 체온이 따뜻해졌다.
이것도 모두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
스스로 읊조린 말이지만 참으로 낯간지러운 말이다.
사랑이란 단어는 왠지 모르지만, 등을 간질간질하게 하고 손의 형태를 주먹으로 만든다.
사랑이란 이런 말이었던가?
그녀가 내게 사랑한다 말하는 것을 상상해본다.
"…… 와!"
이제 알았다.
사랑이란 단어는 낯간지럽고 부끄러운 것 이상으로 부드럽고 그저 한마디에 심장을 뛰게 하는 그런 마법 같은 말이다.
그저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상상을 한번 했을 뿐인데 어쩐지 얼굴이 뜨겁고 내 마음은 행복 그 자체로 변해 있었다.
사랑은 참으로 대단하다. 나를 이렇게나 변하게 할 수 있다니.
물론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 그녀가 열한 배 정도는 더 대단하지만 말이다.
"그레이스."
여자치고는 크지만, 그 울림이 단아한 음성. 내가 사랑하는 그녀다.
사랑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물론 사전에 한 약속 때문이라도 이 모든 것은 사랑 덕분이다. 행복하다.
"기다렸어. 유린."
그녀를 처음 보면 가장 먼저 늠름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달빛 아래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한 명의 전사와도 같이 늠름했다.
또한, 한 명의 여성과도 같이 아니,
주관적인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한 명의 여신과도 같이 그 자태가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하였고
그때 즈음이면 나는 또다시 그녀에게 홀려 있었다.
"늦었는데 불러내서 미안해."
늦은 밤에 불러낸 무례에 대해 사과하자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루비의 결정과 같이 빛을 발했고
그녀는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레이스.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그레이스는 사과하는 버릇부터 고치라고 했지?
지금 우리가 만난 건 서로 약속해서 만난 거 아니야?"
"맞아."
"그런데 왜 그레이스가 사과하는 건데? 이러면 마치 내가 억지로 나온 것 같잖아."
이러하게 확실한 성격도 아주 좋다. 어떤 점에 내가 그녀에게 사랑에 빠진 건진 모르겠지만,
아마 이런 점도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미안해. 이제 사과 안 할게."
"또 또! 한 번 더 사과하면 진짜 화낼 거야?"
귀… 귀엽다! 큭! 이게 진정한 사랑인가?
뾰로통해진 그녀의 얼굴도 너무 사랑스럽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그레이스 말대로 이런 시간에."
역시 그녀다. 주제의 전환이 빠르다.
사실 내가 오늘 그녀를 불러낸 건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이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일단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녀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이유는 없다.
굳이 말하라고 한다면 바라만 봐도 좋아서라는 말이 나오겠지만 뭐, 상관없겠지.
역시나 내가 아무 말 없이 눈을 맞추기만 하니 그녀는 당황한 모양이다.
자신의 볼을 쓸며
"그레이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라고 했다.
무시하고 그냥 계속 바라봤다.
그러자 몇 초 후 그녀는
"왜 그러냐니까!"
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화가 난 모양이다.
그녀는 평소에도 성미가 급하다. 현재 상황으로서는 결과적이지만 내가 그녀를 놀린 모양새가 되었다.
그녀의 눈동자라는 호수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일이 이런 결과를 빚었다.
사과할까 생각하다가 사과를 하는 버릇을 고치라는 그녀의 말이 떠올라 말을 삼키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만남을 청한 목적을 수행하기 전에 심호흡을 작게 한번 했다.
오늘 아니, 일 년? 아니 평생에서 가장 떨리는 순간이다.
성공한다면 당장 기쁨에 심장마비로,
실패한다면 충격에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은 인생 최대의 미션.
고백이다. 오늘 나 그레이스 미르치아 루슬렉은 하 유린에게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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